U.S M-65 Fishtail parka
U.S M-65 Fishtail parka

*이전 내용은 M-51파카 참조


<장진호 전투의 유산 - m-47>

m-43 이후 개발된 m-47은 현재 많은 인기를 끄는 m-65, m-51 그리고 m-48까지 밀리터리 파카의 베이스가 되는 아이템이다. m-47은 옥스포드 코튼 아웃쉘과 이전 모델과 동일한 알파카 울 라이너가 사용되었고 외피와 내피가 분리가 되고 외부 4개의 큰 아웃포켓들이 특징이다. m-47은 육군 / 공군/ 해병대에 보급이 되었는데 각 군에 보급된 m47은 다른 디테일을 갖고 있다. 육군은 갈색의 알파카 털을, 공군은 하얀색 알파카 털을 내피로 사용한다. 또한 해병대는 허리 사이즈 조절을 버튼으로 하고 공군과 육군은 벨트로 사이즈 조절을 하게 되어있다.  중앙에 벨트가 내장되어 있는 육군과 공군의 m-47은 벨트가 유실된 모델이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탄띠 때문이다. 탄띠 착용을 위해 내장되어 있는 벨트를 풀어 외부로 착용하였고 이로 인해 m-47 빈티지 제품 중에서 벨트가 유실된 제품들이 많다고 한다. 

m-47은 보급 이후 여러 단점을 안고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큰 이유로 나누어 보자면 경제성과 보온성에 있어 상당한 단점을 갖고 있다. 이 두 단점의 시발점은 라이너로 제작된 알파카 울 때문인데, 전시 상황에서 소모품의 역할로 사용되어할 군복에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알파카 울이라는 소재가 사용되었으니 알맞은 타이밍에 맞춰 보급과 생산이 불가하다는 점이 경제성에서 큰 단점을 안고, 보온성이 좋고 습기에도 강한 알파카 울이지만 젖었을 때 혹한 지방에서 털이 얼어버린다는 점과 그로 인한 보온성 악화, 활동성의 저하가 군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기에 미군은 다음 파카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m-47이 많이 알려진 이유는 장진호 전투 때문인데 1950년 함경북도 장진군에서 시작된 전투로 11월 ~ 12월 사이에 진행된 전투다. 겨울철 영하 30도를 웃도는 징진군의 추운 날씨에 미군은 m-47 파카를 보급품으로 지급을 하였고, 미군들이 m-47을 착용하고 전투에 임해 우리나라에서 장진호 파카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피쉬테일 파카의 시작 - m-48>

m-47의 개발 이후 단점을 보완하고자 ex-48의 개발, 그리고 1948년 m-48이 개발되었다. m-48은 옥스포드 코튼의 아웃쉘로 제작이 되었고 m-51과 m-65의 베이스가 되는 피쉬테일 형태로 제작이 되었다. 피쉬테일의 첫 등장이다. 후드는 일체형이며 소매에 시가렛 포켓이 있는 것이 특징적인데 2차 세계대전 때 개발되었던 n-2 / n-3 / b-15b의 시가렛 포켓의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후드에 달려있는 털은 늑대 털을 사용했다. 시가렛 포켓과 후드 퍼 때문에 생산성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m-48은 짧은 기간 동안 생산되고 사라지게 된다. 

m-48 모델이 갖는 상징성은 바로 피쉬테일 디테일의 시초가 되는 모델이라는 점인데, 이런 상징성과 짧은 생산 기간(1년) 덕에 m-48은 구하기 굉장히 힘든 오리지널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너는 초기에는 울 알파카의 일부 사용과 함께 합성 내피의 사용으로 바뀌었고 m-48의 테스트 버전인 ex-1은 섬유 유리 소재 라이너로 교체되었다. (유리 섬유는 단열재 혹은 흡음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m-51의 샘플 - ex:50>

ex:50의 ex는 experimental의 약자이며 말 그대로 테스트용 샘플이다. m-48의 개발 이후 m-51 개발을 위해 테스트가 진행이 되었던 모델이다. m-48과 유사한 외형을 갖고 m-51의 라이닝 시스템이 적용된 샘플이다. m-51의 실험판 모델이다. 


<라이더들의 코트 - m-51>

m-48의 생산성 문제 이후 개발된 m-51에는 시가렛 포켓이 삭제가 되었고 모자 털 또한 코요테 털로 변경이 되었다. 대신 후드 일체형은 동일하고 어깨에 견장이 생겼다. m-51의 라이너는 초기 생산에는 양털 내피가 사용되었는데 이마저도 생산성 때문에 2세대부터는 울 타월 라이닝으로 교체되었다. m-51은 생산성 때문에 생산 시기에 따라 세대가 구분되곤 한다.  1세대 m-51은 이전 m-48과 동일한 옥스포드 원단이 사용되었고 탈론사의 니켈 지퍼가 사용되었다. 라이너 또한 울 파일 라이너로 묵직한 무게감이 특징이다. 2세대 m-51은 포플린 원단으로 바뀌었고 콘마 사의 지퍼가 사용되었다. 울 파일 라이너의 활동성과, 건조 문제, 생산성 문제로 인해 울 타월 소재로 변경이 된 세대다. 3세대는 코튼 나일론 원단으로 콘마 사의 지퍼가 사용되었고 라이너는 바뀌지 않았다. m-51 또한 생산성에 있어 문제가 발생했는데, 후드에 부착되는 코요테 털과 함께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진행하며 나일론의 사용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m-51의 생산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53 한국 전쟁 휴전 이후로 m-51의 보급이 거의 중단되었다. (생산은 진행되었는데 한국 전쟁 이후 제작된 m-51은 스코빌 사와 크라운 사의 지퍼를 사용했다.)

<m-65의 샘플 - t-60>

us army QMC(Quartermaster Corps)에 의해 개발된 m-65의 샘플이다. 미국의 나일론 규제 해제 이후 미군은 m-51의 다음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개발된 파카이다. 형태와 디자인은 m-65와 유사하다. us army QMC는 전쟁 기간 동안 군인들의 물자 공급과 개발을 하여 군대에 지원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밀리터리 파카의 대중화 - m-65>

m-51의 보급 중단 이후 그리고 미국의 나일론 규제 해제 후, 미국은 냉전 대비 파카를 개발하였고 1968년 m-65의 생산과 보급이 진행되었다. m-65는 나일론 폴리 혼방 원단으로 제작된 외피와 퀼팅 내피 , 그리고 탈착 가능한 후드로 구성되었다. m-51에 존재했던 견장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미군의 계급장 부착 방법의 변화로 인한 영향으로 보인다. 후드의 트리밍은 생산 초기에는 다양한 동물 털이 사용되었지만 72년 인조털로 교체가 되었다. 교체된 인조털이 개 털과 유사하다고 하여 국내에서는 개파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후드의 트리밍과 같이 m-65는 생산 시기가 2차례로 나뉘어지는데, 세대로 크게 나누자면 72년 전후로 나누어진다. 72년 전 m-65 모델들은 네임 택이 없으며 은지퍼를 사용하였고 72년 이후 모델들은 네임 택과 황동 지퍼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m-65는 냉전을 대비하여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량 (150만 장 추정)을 생산했다. 이 때문에 m-65를 생산하는 군납 업체가 많아 밀스펙을 베이스로 다양한 회사들이 제작을 했는데, 각 회사마다 다양한 부자재들이 사용되었다. 이는 외피뿐만 아니라 내피도 포함되며 전체적인 m-65라는 큰 형태는 같지만 생산 시기와 생산 업체에 따라 m-65는 부자재의 스펙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70년대로 접어들며 생산량이 많았던 m-65는 싼 가격에 대중에게 풀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m-65는 다양한 하위문화에 녹아들어 많은 사랑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가장 구하기 쉬운 오리지널 아이템이 되었으며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빈티지 아이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