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YCLE NYLON DOUBLE BREASTED COAT
RECYCLE NYLON DOUBLE BREASTED COAT

리사이클 나일론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남성복 대부분의 근원은 군복에서 유래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의복의 역사를 파헤치다보면 어렵지 않게 어떤 원류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어떻게 변화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디건, 피코트, 치노 팬츠, 손목시계, 독일군 스니커즈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군복 기반의 원류에서 오는 제품들이 많다. 하지만 완전히 군복에서 유래된 옷들과 달리 트렌치코트는 시작은 군복이 아니었다. 비를 피하는 레인코트에서 시작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복으로 사용되면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현재의 트렌치코트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트렌치코트의 기원>

1800년대 초, 영국의 많은 디자이너와 발명가는 비가 자주 오는 영국의 날씨에 맞는 방수 기능이 있는 천을 개발 및 생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1823년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찰스 매킨토시(Charles Macintosh)는 현재 고무라고 불리는 물질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기존의 섬유에 코팅하였다. 당시의 고무는 주로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생산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매킨토시는 방수 기능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매킨토시가 만든 레인코트의 첫 번째 신제품은 고무로 울(wool)을 감싸 빗물이 스며 들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 레인코트의 고무로 전체를 덮은 재질은 엄청난 무게와 통기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이 디자인이 현대 트렌치코트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이후 매킨토시는 토머스 핸콕(Thomas Hancock)과 함께 현재는 쓰이지 않지만 당시의 새로운 기술인 *가황공법을 이용해 현재 맥코트라고 불리는 맥(Mac)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방수 외투로서 실용성이 매우 떨어졌다. 이 후 많은 디자이너 혹은 발명가들은 방수 소재를 이용한 의복 개발에 힘썼지만, 대부분 무거운 무게와 긴 기장에서 오는 실용성의 부재가 있어, 분명 개선의 필요성이 있었다. 



(매킨토시의 레인코트 광고)



<버버리의 개버딘>

버버리(Burberry)는 현대식 트렌치코트를 발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늘날 트렌치코트를 버버리 코트라고 부르는 만큼 상징적이다.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었던 당시 영국의 레인코트를 1856년, 토마스 버버리(Thomas berberry)가 ‘개버딘(Gabardine)’이라는 소재를 개발하면서 급격하게 발전한다. 토마스 버버리는 실험을 통해 촘촘한 이집트면을 직조하기 전에 실 자체를 방수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런 실로 엮은 능직(Twill) 소재에 다시 한번 방수 가공한 소재를 개발하여 ‘개버딘’이라는 상표로 등록했다. 이렇게 완성된 개버딘은 고무로 코팅된 무거운 레인코트와 달리 가볍고 통기성도 좋았다. 버버리의 개버딘을 이용한 첫 작품인 타이로켄(Tielocken)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타이로켄은 비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영국군 장교급에서 사용되며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성공을 거두면서 공식적인 영국군의 외투가 되었다.


(1890년, 버버리가 개버딘을 만드는 공정)



<비를 피하던 코트가 총알을 피하다>

타이로켄이 트렌치코트(Trench coat)라고 불리기 시작한 계기는 제 1차 세계 대전이었다. ‘Trench’는 ‘참호’ 혹은 ‘도랑’이라는 뜻이다. 1914년 9월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진격이 멈추고 무려 4년 동안 전선이 움직이지 않는 혹독한 참호전이 벌어졌다. 땅을 파서 만든 참호 안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비가 내리면 병사들은 온전히 그 비를 맞아야 했다. 비를 맞은 병사들에게 밤과 겨울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국면을 맞이한 영국군은 버버리의 타이로켄을 채택하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결과 버버리가 공급하는 외투는 트렌치코트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버버리의 코트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 대전에서도 맹활약 했다.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의 병사들)



<영화 산업과 트렌치코트>

트렌치코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화 속에 등장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당시의 영화 산업은 허구와 매력적인 시나리오, 유행을 선도하는 영화배우들에 의해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트렌치코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는 전형적인 미남도 아니고 키도 배우치곤 작은 편이었지만, 특유의 분위기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턱시도와 페도라와 함께 착용하고 나온 트렌치코트는 고독한 사랑을 하는 쓸쓸한 남자의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오는 신은 겨우 두 세번이지만 험프리 보가트는 그 장면만으로 트렌치코트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이와 함께 오드리 헵번, 제임스 딘, 해리슨 포드, 주윤발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트렌치코트를 착용하고 영화 속에 등장했다. 그 결과 트렌치코트는 엄청난 유행과 함께 대중화가 이루어졌고, 현재까지도 하나의 상징적인 아이템으로써 소비되고 있다.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 1899 -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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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황공법 : 고무나무의 수액을 산으로 굳혀서 얻어진 생고무에 유황을 혼합하여 가열하면 고무 특유의 탄성을 가진 안정된 물질을 얻을  공법미국의 굿이어가 발견하였다.